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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캄보디아 납치 사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그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졌는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회혼계라는 대만 스릴러 작품을 시청했는데,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여서 많이 놀랐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딸을 잃은 두 어머니가 범죄 조직의 두목을 부활시켜 복수를 계획한다는 것인데, 겉보기에는 통쾌한 복수극 같아 보여도 정작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수의 쾌감이 아니다. 오히려 회혼계는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고의로 설계한 “희망고문”, 인간을 조종하는 범죄 시스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극 중 인물 퐁이 납치된 소녀들을 몰래 구출하려는 시도였다. 깊은 밤을 틈타 아이들을 몰래 차에 태워 건물 밖으로 탈출시키려 했고, 다행히 범죄 조직에 발각되지 않은 채 모두 무사히 빠져나가는 듯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나는가 싶어 숨죽이며 지켜봤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사실은 범죄 조직이 고의로 설계한 ‘희망고문’이었다. 범죄자들은 아이들이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을 일부러 심어주고, 그 희망을 반복해서 짓밟으며 극한의 절망감을 안겨준다. 직접적인 신체 폭력은 아니었지만 피해자의 희망을 이용한 심리적 폭력은 더욱 잔혹하게 느껴졌다. 특히 이렇게 피해자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수법은 최근 뉴스에서 본 캄보디아 인신매매 사건과 닮아 있어 소름이 돋았다. “허구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증명해 보인 영화다.
서기(Shu Qi),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인 배우
솔직히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넷플릭스 추천 목록을 보다가 반가운 얼굴, 배우 서기(Shu Qi)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주성치 감독) 때부터 좋아하던 배우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밝고 명랑하며 가녀린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딸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깊고 차가우며 단단히 응어리진 감정을 섬뜩할 정도로 잘 표현해낸다. 특히 서기(후위진 역할)가 종교 단체 지도자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대화의 초반부에 그녀는 마치 아이처럼 나직하고 처연하게 말하다가도, 순간 눈빛을 바꾸며 딱 잘라 정색한다. 그 찰나의 변화 속에서 슬픔과 분노, 냉정함이 한꺼번에 묻어나왔고, 그 복합적인 표정이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보는 저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배우 서기의 존재감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보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회혼계' 개봉 시기와 캄보디아 사건의 섬뜩한 교차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공교로운 영화 개봉 시점이다. 과연 감독이 이 이야기를 구상하던 당시, 오늘날의 캄보디아 납치 사건이 이렇게 큰 사회적 이슈가 되리라고 예견할 수 있었을까? 설령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영화 내용이 현실의 범죄 수법과 너무 흡사해서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회혼계는 마치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듯 세상에 나왔고, 그 모습은 한 편의 현실이 된 예언서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범죄조직은 단순히 뭉뚱그려 ‘악당’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 정치, 경찰과 결탁한 복합적 범죄 시스템의 일부로 그려진다. 이러한 부패한 시스템 안에서는 정의가 점차 제 기능을 잃고 마비되어 간다. 이를 지켜보면서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국가가 범죄 세력과 은밀히 거래를 하고, 정의가 ‘이익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순간 법은 그저 허울뿐인 껍데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정의가 사라진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 영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의를 부르짖지만 결국 남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
회혼계 영화가 뛰어난 점 중 하나는, ‘정의’를 단순히 옳고 고귀한 것처럼 미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화 속에서 딸을 잃은 두 어머니의 분노는 겉보기에 충분히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내 아이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이기심이 깔려 있다. 범죄자들은 남의 자식을 벌레 보듯 하며 잔혹하게 다루기에 분명 악당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수를 감행하는 어머니들 또한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오로지 자기 자식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이렇듯 불편한 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통찰은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우리는 우리와 관련된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분노하지만, 정작 내 일과 무관한 타인의 불행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침묵해 버리곤 한다.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주제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듯 하다. 과연 우리의 정의로움은 얼마나 진실되고 보편적인 것인가 하고 말이다.
최첨단 기술 시대, 그러나 인간성은 여전히 야만적
현대 사회는 마치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굴러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세상은 너무도 편리해졌고, 어디를 가도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범죄가 발생하면 즉각 영상으로 기록되고 AI가 얼굴까지 식별해내는 시대이다. 우리는 첨단 기술이 범죄를 뿌리 뽑고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캄보디아 납치 사건을 돌아보면 인간은 여전히 납치하고, 속이고, 악랄한 거래를 일삼고 있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인간성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넷플릭스 스릴러 회혼계는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냉혹한 거울처럼 느껴지며, 우리가 사는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강렬한 사회 비판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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