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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인간의 본능과 "어쩔 수 없음"의 합리화
처음 이 영화를 보러 갈 때만 해도,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몰랐다. 아내가 갑작스럽게 예매한 영화였고, 단순히 인기 순위에 올라 있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낯익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침묵이 흐르는데도 묘하게 불안하고, 일상의 대화가 폭력보다 더 잔혹하게 다가왔다. 현실적인 유머와 섬세한 긴장감이 뒤섞인 그 공기 속에서, 나는 곧 아, 이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구나하고 직감했다. 등장인물로는 평범한 가장 만수(이병헌)가 있다.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회사에서 해고된 뒤, '가장'의 역할과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점차 무너져간다. 그의 몰락은 단순히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이 처한 구조적 불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중심 장면 중 하나는, 만수(이병헌)가 오랫동안 금주하던 습관을 끊고 충치를 스스로 뽑은 순간이다. 이 장면은 그가 자기 통제력을 잃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인간이 생존의 경계에서 자신이 유지하던 도덕과 통제의 껍질을 벗겨내는 의식처럼 보인다. 그의 고통은 사회적이고, 동시에 너무나 개인적이었다. 카메라는 이 행위의 장면을 잔혹하게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관객의 심리적 통증은 오히려 더 컸다. 그를 지켜보는 아내 미리(손예진)의 시선은 더 아프다. 남편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녀의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남편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몸무림치고 있는 상황인걸 알고 있기에 침묵하지만,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찾을 수 없기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그 침묵은 도덕의 결핍이 아니라, 체제의 압박에 대한 순응이자, 사랑의 왜곡된 형태로 보이지며, 침묵만으로 어떤 대사보다 강렬한 울림을 준다.
공장에서 사람 대신 기계가 일하고, 자동화AI가 사람을 대신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이롭게 구원할 거라 믿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인간이 쓸모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했다. 단순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결국 쓸모없어진 인간의 자기합리화처럼 보인다.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무너진 사회에서, 앞으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회사의 구조조정, 인공지능 도입, 자동화의 가속은 인간을 점점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다. 만수(이병헌)는 그 시스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그것을 유지시키는 가해자이다.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조차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심어놓은 이기적 생존본능일 뿐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 모순을 차갑고도 블랙코미디적인 시선으로 조명하였다. "어쩔수가없다" 영화는 "기생충"과 비슷하게 현실적이면서 불편한 마음을 만드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주인공의 살인이란 행동에 완전히 분노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동정하지도 못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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